메멘토모리의 기독교비평연구소
빌리그래함 50주년 기념교회에 대한 메멘토모리의 생각 본문
빌리그래함이 대한민국에 와서 부흥회를 한지 50년이 지났다.
내가 저 집회에 참석해보지도 또 저 집회가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자료조사가 미흡한지라
뭐라 왈가불가하기 싫지만 그래도 아는 지식을 종합해서 평가를 내리자면 급속도로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모든 면에서 부흥하는 대한민국에 종교가 그 막차를 타는 순간이었고 또한 그 시기에 빌리 그래함이 내한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교인수와 교회의 외형적인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에서 보자면 빌리 그래함 집회는 한국교회가 내적으로 튼실하게 천천히 부흥하기보다 외적으로 부흥하는데 가속도를 밟게 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과거는 과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거의 영적인 사건이 상징화 되어서 구약에 나오는 느후스단이 되어버린게 정말 처참하다.
구약에 모세가 하나님에게 받은 명령으로 불뱀에게 물린 백성을 구하기 위해 만든 놋뱀. 어떻게 된 것이 그것을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결국은 우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히스기야가 파괴했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우상이 되어서 결국에는 진정한 회개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죄악을 범하게 만들었다.
빌리그래함을 50주년으로 예배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다. 한국교회의 올림푸스 신전 목사들은
빌리 그래함을 마치 박물관에 배치된 동물 박제처럼 만들어버리고 50년 동안 아니 드디어 50년 만에 그 빌리 박제를 다시 꺼내들어 마치 놋뱀 처럼 꺼내들었다. 놋뱀은 썩지 않지만 빌리 그래함은 이미 썩어 주검이 되어서 땅에 묻혔것만… 한국교회는 더 무섭게 영적으로 파묘하여 빌리 그래함을 아들을 빌어 다시 장대에 내걸었다.
결국 권력이양의 작업으로 서의 집회
집회를 준비한 준비위원이나 그래함의 두번째 통역을 맡은 자나 전부 한국교회의 부흥과 멸망의 사이에 정점에 서있는 자들이다. 누가 봐도 자기 목회적 권력과 목사로서의 부를 이양하기 위한 어차피 자기들끼리의 꿍짝이지만 어쨌든 이양하기 위한 자리라고 보여진다.
나처럼 멋진 아들이 이제 한국교회를 이끌어 갈 것이다. 라고 말이다.
아무도 관심없는 대한민국
내 교회는 솔직하게 이 집회에 대해서 들은 바도 없다. 내 담임은 신학연구로 미국으로 떠났다. 주보에는 광고조차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 물어보니 그 집회가 있는 것조차 모른 목회자가 다수였다. 심지어 그 쪽 교단의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뉴스에 아니 유투브에 아니 네이버에 아무도 다루어 주지 않을 정도로 이제 기독교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그렇다고 기독교, 개신교라고 하지마라! 그들은 기독교와 개신교 내에서도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든 새로운 집단이라고 해야 한다.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마치 히스기야 시대까지 성전과 여호와 이외에 놋뱀까지도 믿었던 부류를 뭐라 불러야 할지 난 모르겠다.
삭힌 포도주를 헤진 포도주 통
결국 삭히고 삭히다 못해 왠만한 사람은 먹지도 못할 포도주가 헤질데로 헤진 포도주 통에 담는 격이다.
무엇이 바뀐게 있는가? 집회 형식조차 자기들이 젊었을 때의 집회의 양식과 전혀 다를게 없다.
사람도 그 시대 그 할아버지들이고 총무격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자녀 손주들이다.
도대체 뭘 보고 새로운 것을 봐야 하는가?
심지어 프랭클린 그래함은 미국에서도 그렇게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전도자로 평가된다.
물론 양 쪽의 평이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아버지에 비해서 그리 선한 영향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메멘토모리의 평
저기에 참석할 시간에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를 10번 시청하는 것이 영적, 정치적, 물질적, 인문학적, 페미니즘적, 가부장적, 기독교적으로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