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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의 기독교비평연구소
성경은 권, 장, 절로 이루어진 책이고 적어도 66명 이상의 저자가 쓴 기록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성경의 제일 큰 목적은 단순히 소설이나 요기꺼리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신의 전언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게 목적이었죠. 즉, 후대에 남기는 과정에서 편집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뭐 그건 학자들이 다룰 문제이니 알아서 냅두기로 하고 제가 말하는건 성경은 쓰여진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읽으면 그저 예수의 이야기인듯 보이지만 적어도 그가 왜 예수의 이야기를 자기의 관점에서 기록했는지가 그 권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쓴 목적, 즉, 구심점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을 찾지 못하면 당신은 성경을 당신이 하고싶은 말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대부분에 설교자들이 이..
안다. 설교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봤자. 교회에서 일잘하고 아부 잘 하고 라인 잘 타는게 오히려 목회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결국 목사는 개척이던 아니면 위임이건 종착역은 일의 능률을 가지고 평가받지 않는다. 결국 종착역의 평가는 설교로 결정된다. 개척교회를 하더라도 결국 교회니 예배빼고 말할 수 없다. 개척교회는 특별하게 여타 교회와 차이점을 줄만한게 없다. 그렇다. 결국 설교다. 위임목사로 가더라도 아무리 일을 잘한 목사라하더라도 위임 후에 일을 잘하는 목사를 데려오지 않는다. 결국은 설교를 잘하는 목사를 데려온다. 부목사의 기간은 길어야 10년 안팎이다. 그러나 당신이 40살에 개척이나 위임목사를 시작한다면 결국은 약 30년을 목회를 해야 한다. 결국 그러니까 설교다. 지..
살면서 다들 모욕감 모멸감은 느껴보셨겠죠. 대부분 갑질이나 부적절한 대우를 통해 모욕감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워낙 성격이 까치러워서 왠만해서는 상처나 모멸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목회를 하면서 단 한번 느껴본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주일 1부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따라 담임목사의 설교가 굉장히 쎄.. 하더군요. 날이 서있고 화가 나있고 비꼬는 말투에 꼭 누군가 들으라고 하는 설교같았습니다. 제가 있는 교단에서는 이것을 정죄설교라고 합니다. 각 교단마다 다양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말합니다. 다들 설교 후에 중직자들이 웅성웅성이더군요. "누구한테 하시는 설교야?" 대부분 교회들이 그렇지만 1부는 교회에 중직자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예배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교회를..
설교를 잘하려면 가장 필요한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기도? 열정? 믿음? 미안하지만 이런 것은 제 기준에서는 거짓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도대체 그럼 얼마나 기도해야 하고 믿음은 어느정도로 커야 하며 열정은 어느 기준으로 뜨거워야 하는지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그대로 성공하면 된거고 아니면 그 기준에 못 미친거라 얼버무리는 거죠. 그럼 도대체 설교를 잘하는 기준은 뭘까요? 그리고 그 능력은 무엇일까요? 설교를 잘하고 싶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흔히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성경을 기초로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어있죠. 그리고 그 번역과 번역 사이에는 언어의 다리가 존재합니다. 즉, 그 다리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기준과 자기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본문을 정해서 설교를 합니다. 예를들어, 성경 본문에는 믿음을 우수성을 말하는게 맞지만 정작 기자가 말하는 것은 믿음이 우수하다고 율법이 실패작이라고 말하는게 아니고 그러니 잘 믿고 잘 살자고 말하는게 아니거든요.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2000년전 그 책을 쓴 기자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쓴 기자를 여친이라고 생각하시고 성경을 읽어보세요 그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미국 초기에도 그랬다. 남부에서 흑인은 대학교에 갈 수도 없었다. 백인과 흑인은 같은 식당에 들어가거나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건 불법이었다. 미국 북부는 어느정도 차별이 금지되어갈 때도 남부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정작 이제와서는 흑인의 차별이 당연하다는 미친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법 조차 헌법의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차별을 정당하다고 하는 집단인 백인우월주의 KKK 단체도 심슨에서 유머소재로 전락해버릴 만큼 그 위치가 하락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회통과에 앞서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앞다투어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물론 법이란 것은 한번 제정되면 그 여파가 엄청나기에 엄청난 논의와 정치 단체들의 시물레이션과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수정해 나가야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일인시위는..
설교에서 8할은 성경이다. 내가 30분을 설교한다고 하면 약 25분은 성경의 이야기만 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거 굉장하게 어렵다. 실제로 본문 약 8구절을 가지고 도입, 중심주제 3가지, 결말 이렇게 약 세 부분을 채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 성경을 볼거냐는 질문을 여기서 한다면 난 “성경 하나만 앞에 펴놓고” 라고 조건을 달고 싶다. 성경한권만으로 설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하려면 성경을 피고 인터넷을 키고 예화를 찾고 주석을 피고 트렌드를 따라가 설교한다. 그럴려면 도입에 좀 세련된 주제를 가져와야 하고 중간 중간 주석에 나온 예화를 사용해줘야 하고 마무리에는 아무도 들어본 일 없는 석학의 한마디 출처도 없이 가지고와 땅! 마무리한다. ..
축자영감설은 어려운 말 같지만 풀어 설명하면 매우 쉬운 가설이다. 성경을 쓸 때에 저자를 통해 성령이 주도하셔서 기록하셨기에 한글자 한글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이다.이 가설에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것이 바로 성경무오설이다. 성경무오설은 말 그대로 성경은 전혀 오류가 없다는 가설이다. 우리는 이 가설이 왜 가설로 밖에 남을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학문이 될 수 없는지 알아볼 것이다. 1.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을 인증할 자료가 없다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은 그 가설을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이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료는 성경이 맞지만 원본을 말한다. 성경 원본이 없고 사본만이 존재하는 이상 이 두가지 설을 입증할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