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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 교수 사태에 대하여 - 서울기독대학과 손원영 교수의 마찰 -

Memento Mori Pastor 2020. 9. 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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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가 된 한 교수님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손원영 교수, 얼핏 지나가다 불상을 모금하는 행위에 대한 기독교 뉴스가 기독교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사건이 종결이 되지 않고 진행 상태인 듯 했다. 심심한 차에 들여다 보니 상황은 심각했지만 그 내용은 유치하게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슬기로운 생활이란 교과서를 읽어보기만 해도 이 상황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학교는 아마 현존하는 대학들 중에서 가장 많이 데모를 하는 학교일 것이다. 비리, 신학적 논쟁, 기타 등등이 있지만 이런 저급한 논쟁으로 인해서 학교가 이런 사태까지 왔다는 것이 한국교회 목사로서 그리고 기독교 비평가로서 너무나 어이가 없다.

 

우선 손원영 교수가 재직 중인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울기독대학이다. 이 신학교는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존 체이스 선교사가 세웠다. 1937년에 설립되었으니 70년 넘은 학교에 속한다. 이 교단은 교회가 약 300-500개가 존재하는 소교단에 속한다.

 

손원영 교수는 바로 이 학교에 18년째 교수로 일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교회 협의회에서 손 교수에 대해서 새로운 침례와 교단 이적을 요구한 것을 보면 손 교수는 이 교단 출신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세대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보아도 어느정도 그의 신학 노선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손원영 교수가 18년째 재직 중인 학교에서 면직이 된 발단은 바로 "법당과 불상 복구를 위해 기금을 모으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2016년 경북 김천 개운사에서 한 기독교인이 불상을 파손하였을 때 이에 대해 기독교인으로서 이 일에 책임을 느껴 복구하는 기금을 모금한 것이 자신의 신학교 이념과 신학에 맞지 않는다고 학교 이사회에서 손 교수를 면직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서 2심 재판 결과까지 손 교수의 승소가 되었다. 3심은 학교 측에서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법원 판결과 관계 없이 손 교수의 복직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표면상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정말 이 이상 음모론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이 사건을 내 블로그에 적는 것도 너무 저질적이어서 올리기가 싫지만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전한다.

 

첫째, 서울기독대학은 교회가 아니다. 대학이다. 그러니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대학답게 싸워라

 

법원이 판결한 이유, 학교측 신학노선과 맞지 않지만 그 이유만으로 교수를 면직하는 것은 합당치 않으며 종교간의 대화화 화해를 이끌어내는 이유로 모금한 것이기 때문에 면직은 불가하다라고 밝혔다. 우선 대한민국의 대학으로서 인가를 받으려면 자신의 학교 신학이념 이전에 헌법이 정한 것 그리고 교육부가 정한 방침에 대해서 따를 의무가 있다. 즉, 종교를 바꿔 가르치란 말은 아니지만 신학 노선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토론과 논쟁을 하는 곳이 대학이라는 것이다.

 

정말 이걸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한 기독교인이 불상을 부쉈다. 그것을 기독교 안의 한 신학교수가 그 법당과 불상 복구를 위한 돈을 모금했다. 여기서 반대로 이야기해보자. 한 불자가 교회로 와서 십자가와 교회 물건을 파손시켰다. 그런데 불교의 한 스님이 모금을 해서 교회에 전달했다. 그럼 그 스님은 스님으로서 잘못한 것인가? 손 교수가 개종했나? 불도를 전했나? 아니면 서울기독대학은 기독교인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타종교인이면 사과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지나가다 누구를 때린 뒤에 종교를 물으며 사과를 하겠다는 말과 다를게 뭔가?

 

상식적으로 누군가 상대의 물품을 파손하면 배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다. 기독교인은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다. 형제 자매다. 기독교인으로서 가족으로서 대신 그 돈을 모금해 배상했다. 여기서 교수직을 면직당하고 신학과 학교의 건학이념을 끌어들일 일인가? 사람대 사람과 물건대 물건으로 보아야 하는 상황아닌가?

 

손원영 교수 사건과 같은 것이 성경에 나온다. 첫번째는 예수다. 예수는 이방여인의 자녀들을 고치셨다. 타종교인 로마 황제를 섬기는 백부장의 종도 고쳤다. 그럼 예수의 신학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검증할 것인가?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고쳐주었다. 엘리사는 그러면 선지자직에서 면직되어야 하나?

 

둘째, 대학은 학문과 토론으로 싸우는 것이다.

대학이 무엇인가? 학문의 장이다. 총과 칼이 아닌 학문과 지식의 힘으로 겨루는 곳이다. 신학이 다르다고 쫓겨나야 할 곳이 아니라 쫓겨나야 할 교수와 학생이 신학 토론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참고로 대학은 학생이 가만히 앉아서 교수가 읽어주는 것을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확고한 이념과 주장을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여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은 곳이 학교이다. 만약 정말로 손원영 교수가 학교에 쫓겨나야 할 만한 사유가 신학이라면 신학을 가지고 싸워서 이기면 학자로서 당연히 그 학교를 스스로 사임할 거라 생각한다. 그게 바로 학자의 패배이고 모욕이다.

 

종교개혁 역사에도 나오듯이, 우리 선진들은 신학 토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고 신앙을 왜곡하는 카톨릭 성서학자들을 개혁신학과 바른 성경관으로 제압했다. 이를 가장 잘했던 사람이 쟝 칼뱅이었다. 우리 선진들은 그렇게 카톨릭 신학을 이겨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대학이란 토론 장에서부터 배워 오는 것이다. 

 

토론을 하지 못하고 데모를 하는 곳을 대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앙이란 이름에 갇혀 결이 다른 신학을 배척하는 것을 우린 Theologie(하나님의 학문)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학은 정정당당한 결투를 토론이라 부른다. 정말로 서울기독대학 학생들이 손 교수를 이기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이 사건에 대한 신학토론 결투를 벌여라, 당연히 결투는 진검승부다. 목숨을 걸 정도로 토론에 임하고 그에 대한 신학적 준비를 하여 붙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보수신학이라고 하니 칼뱅에만 멈춰있다면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카톨릭도 마틴 루터에게 자신의 신학을 설명할 시간을 줬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카톨릭은 그를 사제직에서 파직시켰다. 그리고 루터에 대한 사형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틴 루터에게 자신의 신학에 대한 연설하기를 허락했다.

 

지금 한국 신학대학들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이 서울기독교대학교와 매우 비슷하다. 제대로 된 설명이나 합리적인 사유없이 교수가 면직되거나 신학노선이 맞지 않는 것을 이유로 댄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부분은 당사자 교수는 자신의 신학을 변론할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면직은 교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사형 직전 죄수에게 교도관이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다. "할말이 있는가?", 마지막 가는 길, 유언으로 남길 말을 할만큼 다 하게끔 한다. 카톨릭도 교도관도 마지막 앞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시간을 주는데 신학대학들은 뭐가 바쁜지 이러한 권리조차 빼앗으며 교수들을 방출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서울 기독대학은 큰 교단이 아닌 소교단에 속한 신학대학이다. 이러한 소규모 대학이 뉴스에 대학 최하등급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다. 다른 말은 안하겠다.

 

손원영 교수가 아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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