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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의 기독교비평연구소
교회는 1884년 공식적인 개신교 선교 시작 이후부터 언제나 ”더 나은“ 무엇인가를 제공했습니다. 이미 미국의 달러는 소 지게차 몇대로 환전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그냥 선교사의 국적 자체가 더 나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은 어땠을까요?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에서 조선의 새로운 교육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백정이 의사가 되었고 여자가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조건, 이것은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미국이나 해외 선진국에서 선교사가 조선으로 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1957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고 급격한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으로 인해서 교회는 누구보다 빠르게 한국인에게 그 주도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스스로 교회를 일구고 스스로 전도하고 심지어 스스..
이재철 씨의 이중직에 대한 발언,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비평 영상이 올라간 뒤에 댓글이 100개 달리고 조회수가 2000을 넘어갈 정도로 내 채널에서는 인기 영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광고 수익이 나지는 않는다… 아쉽게도 댓글에서 하도 나를 욕하길래 너무 무서워서 이재철 씨를 칭찬하려고 한다. 칭찬이다. 곡해해서 보지 말자. 1. 이재철이 목사 은퇴 이전에 대형교회 축에 1만 명 교회 이상의 목회자 라인에 서거나 끼지도 못했다. 이건 사실이다. 목사 시절 이야기다. 그의 역량이 교인의 숫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숫자란 객관적 기준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2. 이재철은 통합 교단에서 파면되기 전에 지지해 주는 세력이나 정치적 연대가 없었다. 안 만들 수도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
저는 지금 이 글을 이디야 카페에서 쓰고 있습니다. 요새 제가 가는 카페가 프랜차이즈로는 스타벅스 아니면 이디야 입니다. 이디야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우선은 거래에 관점으로 교회를 바라볼려고 합니다. 이 세상은 거래로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결혼 조차 거래의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죠. 남자는 생활의 안정을 여자는 ?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자가 아니라.. 직장을 다닌 다면 이력을 위해 만약 빵집에 간다면 맛있는 빵이나 특정한 빵을 사기 위해서죠. 욕구와 수요가 있으면 그곳을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거래할까요? 교회가 빵을 파나요? 밥을 거래합니까? 아니면 여름수련회 물놀이를 파나요? 아니면 사회봉사활동으로 거래하나요? 도대체 교회를 찾아오는 교인들의..
설교는 목회자에게 굉장한 딜레마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시기부터 시간을 세어보아도 이미 성경에 모든 구절은 적어도 목회자 한사람당 5번 정도? 아니면 100번 정도는 설교가 되었을 것이 예측되죠. 이미 유명인들의 주석을 봐도 현재의 설교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설교는 매번 재탕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제한이 많았죠. 거리, 이동, 수단, 등등 예전에는 먼 거리의 어떤 목사님 설교 한번 들으려면 마음 잡고 가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당시에는 버스조차 타기 힘든 시절이 있었으니깐요. 그래서 나타난게 바로 부흥집회입니다. 모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 그것도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던 겁니다. 그런 교인들의 욕망이 결국은 설교 테이프 판매로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