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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설교를비평한다] 6/7 주일 오전 1부예배 - 생태정의에로의 회심_송준인 목사 본문

돌아온 설교의 실제

[너의설교를비평한다] 6/7 주일 오전 1부예배 - 생태정의에로의 회심_송준인 목사

Memento Mori Pastor 2021. 1. 1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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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의 시간 (20/20)

 

설교는 약 27분으로 가장 적절한 시간이었다. 단순히 설교만으로 27분이 소요된 것으로 보아 기도나 또는 본문봉독까지 합하면 30분-32분이 소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알맞은 그리고 적절한 소요시간이었다.

 

2. 본문의 적절성(14/20)

 

우선 본문은 '바울 회심사건'을 다루는 사도행전 9장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이다. 여기서 집고 가야 할 것은 이 설교에서 설교자는 본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설교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그 어떤 설교자의 지식이나 지혜가 본문을 앞도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설교자는 27분이라는 시간에 본문을 철처하게 무시하고 생태정의란 자신의 논문 주제에 기인한 환경에 대한 성경해석을 내놓았다. 중반부에 가서 바울이 회심하여 하나님께 가듯 생태정의에로의 회심에 대한 맥락을 가져갔지만 본문에서는 그러한 인사이트는 뽑아내기 매우 어렵다.

 

좀더 쉽게 말하면, 설교자의 설교 내용이 틀렸다니 보다는 본문과 상이한 내용의 설교를 함으로써 본문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었거나 단순하게 쓰여진 상황이기 때문에 본문이 무시당했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모든 설교자들의 설교를 비평할 때 말했듯이 그 어떤 설교보다 본문이 중요하다. 본문에서 설교가 나오고 본문에서 설교제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설교학적으로 이 자체만으로도 낙제가 될 만한 큰 오류라고 봐야 한다.

 

3. 예화의 적절성(15/20)

성경에서 나오는 환경의 내용과 현대의 환경의 내용은 공통분모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환경오염이란 단어 자체도 20세기 들어와서 나온 단어이기 때문에 성경이 쓰여진 당시에 환경오염이란 주제로 설교하기에는 그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예화 또한 그렇다. 베드로가 고기를 못잡는 것에 대한 이유를 현대의 환경오염과 맞닿아 논리를 펼칠 수가 없다. 엄연히 그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장면이다. 단순히 환경오염이란 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코로나와 메르스에 대한 뉴스를 예화로 들었는데 코로나는 신종바이러스로 아직까지도 수많은 연구논문이 나오고 있으며 감염경로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학적으로 동물에게서 인간에게로 감염이 되는 바이러스는 매우 드문 일이기에 이것이 중국 우한 안에서 생화학 무기로 연구되지고 있다는 이론과 뉴스도 나온다. 그리고 정치성이 짙은 이러한 예화는 대게 들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매우 좋다.

 

또한 설교자는 코로나로 인한 인간의 행동부재가 환경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로 인간이 안됨으로 환경이 산다라는 논리를 취하는 건 성경과 극히 대비된다. 오히려 함께 가야 함을 더 강조해야 할 것이다.

 

4. 설교자의 자세 (17/20)

설교자의 자세는 거론할 것이 없다. 용모가 단정하며 이마가 절반이상 보이고 자세 또한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설교하였다. 그러나 설교자가 원고를 너무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꼭 고쳐야 설교자의 자세이다.

 

5. 수사학 (14/20)

설교의 강약을 주는 부분이 매우 약하다. 설교가 매우 단조로와서 듣는 청중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주제 자체가 논문에서 기인한 만큼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거나 제목 자체를 쉽게 바꾸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말하지만 주일예배는 공예배로서 다양한 성도가 와서 예배를 드린다. 이에 모두가 공감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주제와 난이도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주일예배 설교이다.

 

<결론: 용의 그림에 점을 찍어야 승천합니다. 점만 찍는다고 용이 되지는 않지요>

 

메멘토모리는 학부와 신대원 시절에 남이 듣지 않는 마이너 신학을 교차수강하며 듣고 신학을 했다. 보수적이어도 페미니즘신학과 생태신학을 듣기도 했다. 이에 본인은 이 설교가 목회학적으로는 또한 설교학적으로 화룡점정의 점정의 부분이 될 거란 생각을 한다.

 

대부분 메이저 신학이 모든 부분을 다 차지한다고 하지만 메이저 신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구멍들이 존대하는 것이 신학과 설교의 영역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메꾸는 것이 바로 마이너신학과 설교의 역할이다. 그러나 마이너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착각이 단순한 점 하나만으로 용을 만들거라는 것이다.

 

이 설교가 바로 그 오류의 한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도화지에 점 하나만 찍었을 때의 예를 보여주는 설교 말이다.

용의 그림에 빠진 눈의 점 하나를 쥐고 있는 생태신학이 되었을 때, 그 가치는 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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