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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더 억울한가보다, 누가 더 상처받았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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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더 억울한가보다, 누가 더 상처받았는가
– 주호민 사건을 통해 바라본 장애와 정의, 그리고 교회의 시선
1. 정의가 가까워질수록, 장애인 가족은 더 멀어진다
주호민 작가의 아동학대 고발 사건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가족입니다.
장애 아동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제한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언어가 되어주고, 모든 걸 걸고 보호자가 됩니다.
하지만 법은 감정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진심은 '정황'이 되고, 부모는 심리적·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건 아이입니다.
정의가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교육과 보호로부터 더 멀어집니다.
2. 반대로 교사나 보조인은 법적 논리에서 유리해진다
장애 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나 보조 교사는
감정노동과 체력적 부담, 그리고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일합니다.
그들의 작은 언행조차
나중엔 녹취나 기록이라는 ‘법적 증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점점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정서적 관계보다 법적 안전이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법정에서는 교사가 더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직업인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왜 편을 들 수 없는가 – 둘 다 소외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 안에서
장애인 사역 부서를 함께하며,
그 자녀들을 키우는 가족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또한, 특수교사로 사역하거나 일하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어려움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습니다.
장애 아동의 부모도, 그를 교육하는 교사도 모두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국가와 제도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채,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현실은 이들을 적대하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같은 편이 되어야 생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4. 교회는 싸움보다 ‘품음’을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가 옳으냐”보다
“누가 아프냐”를 먼저 보셨습니다.
(📖 마가복음 3:4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교회는 정의의 심판자가 아니라, 회복의 중보자여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편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둘 다 품을 수 있는가?”
장애 아동의 부모도, 교사도
우리 공동체가 책임지고 기도해야 할 이웃입니다.
소외된 자들 사이의 갈등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 결론 – 싸우지 않고 바꿀 수 있는 사회를 원합니다
장애 아동과 그를 가르치는 교사는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법의 칼날보다
사랑의 팔이 먼저 움직이는 사회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교회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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